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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기문명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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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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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명인을 찾아서 수봉 이기목 선생님 문파가 낸 “기문둔갑의 모든 것이란” 책자들이 있다 책 내용 중 수봉 선생님 말년에 모 제자가 스스로 책을 내고 저작권 등록을 하고 CD로 프로그램을 짜서 판매를 해,찾아가 다투다가 팔을 다쳐 이로 인해 돌아 가셨다 한다.
책자 말미에 보면 1대 방장을 을파소고 홍연정결이란 비급이 있고 중간에 연개소문의 스승이란 분도 이름이 적혀 있다… 아마 문파내 전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야사가 있지 싶다..
중간에 적힌 방장들 이름을 보고,동기정해를 읽어보니 떠오른 생각이 을파소는 고국천왕대 대대로로 지금의 국무총리 직을 맡은 분이며 고구려는 이후 수당의 침입을 받는다 수나라 1차 침공때 을지문덕 장군이 우문술의 병력 30만을 평양성 인근 으로 끌여 들인 후 거짓 항복을 하여 퇴각하는 수나라 군대 30만명중 2,700명만 살아 돌아가게 살수 대첩을 통해 수나라 군대를 아작을 낸다 아마 을지문덕도 을파소 집안일 거란 나만이 생각을 굳게 하며,동기정해2권을 보면 중간 중간 군대의 진군법,병력을 배치히는 진법,별자리로 천문을 읽는 법,점치는 법까지 나오니 고구려의 장수들은 무력만 강했던 것이 아니라 학문에도 일가견이 있어 보인다
당시 을지문덕이 압록강을 건너 우중문에게 거짓 항복을 하며 적진을 찾아가 진중을 살피고 무사히 나왔던 것도 점을 치고 들어가는 시간을 정했음이고,수군을 살수로 몰아 몰살 시킨 것도 적을 기문국의 사문으로 몰아 넣고 천문을 보아 적시에 공격했던 배경이 있지 싶다 이후 연개소문도 이 기문에 통달했다고 하지만 결국 내분으로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다
물론 김유신 장군도 이 학문을 배워서 싸움에 적용하니 당나라를 몰아 낼 수 있었다고 추측이 되며 홍국기문이라고도 하고 동국 기문이라고도 하는 이 학문은 그 용처가 개인의 운세를 보는데 국한 된 학문이 아니지 싶다..
이후 이 기문학이 워낙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 나라에서 금하니 산속으로 숨어들고 한국 역사에 별반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도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수하에 기문술사가 있었을 거라 미뤄 추측하는데 역시 이것도 나만의 생각이다.. 없었으면 어떻게 27전 27승을 하겠는가 ??(생각에..)
나라가 풍전등화에 다다르면 홀연히 나타나 적을 무찌르는 기책을 내고 평상시에는 한 해에 기후와 물가를 추정하고 여러 국책을 정한는데 주요 수단 사용 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현대에 이르러 34대 방장이신 수봉 이기목 선생은 단지 개개인의 운세를 감정으로 국한 되는 본문의 비전이 안타까워 훗날 눈밝고 명철한 제자가 나와 문중을 다시 새롭게 일으켜 주길 희망하며 아낌없이 가르치고 책자를 발행해서 퍼트렸지만 흉중에 아쉬움이 어찌 없었겠는가??
선생은 운세 감정으로 생활을 해야 하는 척박한 현실과 그래도 국내에서 태청궁청구태학당 방주로 1등 훈장임을 마지막 자존심의 보류로 삼고,가르침에 있어 제자들이 이 학문을 배워 자기 분야에서 응용 발전하며 살아가는데 신념을 갖고 살았는데,갑자기 원조 감자탕 분쟁도 아니고 왠 제자가 저작권 등록하고 프로그램 시디 구워서 팔고 동네 백화점에서 강좌도 열며 원조라고 하고 다니니 기가 막히셨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우연히 이 제자라고 추정되는 분 사이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저작권 등록 된 책자는 백화점 문화센터 등록해서 배워야만 주고 본인이 35대 방장이라 소개도 하고 있다…헐 수봉 선생이 묘소에서 이러지 싶다 ”꼭 그렇게 다 가져 가야만 속이 후련했냐…ㅆㅂ..”- 영화 해바라기 대사다..
긴글 읽어 주셔서 감사하다 그래서 기문명인이 어디에 있냐고? 지금 열심히 동기정해 읽고 있다고만 알려드리는 고충을 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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